1. 제주비엔날레가 평범한 미술관 여행과 다른 이유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유명 작품을 한 건물에 모아 놓은 행사가 아닙니다. 제주 곳곳의 바람과 돌, 해녀 공동체, 유배의 역사와 신화를 따라 이동하면서 섬 자체를 하나의 전시장처럼 경험하는 예술 여행입니다.
제5회 제주비엔날레의 제목은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입니다.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은 섞고 모으고 흥을 돋운다는 의미를 지닌 제주어입니다. 제주 토착 문화가 외부 문명과 만나 새로운 형태로 변해 온 과정을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20개국 69팀이 참여했습니다.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레미콘까지 총 다섯 장소에서 이어집니다. 각 전시장이 놓인 자연환경과 도시의 기억도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세계 곳곳에 비엔날레가 늘어나면서 지역 이름만 빌린 국제 전시도 적지 않게 등장했습니다. 제주비엔날레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외부의 화려함보다 제주라는 섬의 고유한 환경과 공동체의 기억을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해외 작가 역시 완성품을 단순히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거나 지역 주민과 협업하면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여행자에게도 이러한 방식은 매력적입니다. 작품을 본 뒤 실제 바람을 맞고 돌담과 오름을 바라보면 전시에서 만난 이미지가 현실의 풍경과 연결됩니다. 관광지를 확인하듯 작품 수만 채우기보다, 다섯 공간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제주를 비교하면서 관람해 보세요.
보도자료 및 관련 뉴스 참고 이미지 (바람-돌-해녀… 제주의 모든 게 작품이 된다)
2. 제주의 바람과 역사를 만나는 핵심 전시장 2곳
제주도립미술관: 바람이 완성하는 움직이는 용암
처음 방문할 장소로는 제주도립미술관이 좋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을 이해하기 좋은 중심 전시장이며, 중산간의 자연환경까지 작품의 일부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 연못 위에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파브르의 키네틱 아트 Jeju Lave가 설치됐습니다. 화산섬 제주의 용암을 모티프로 삼아 1,000여 개의 형광색 리본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미술관 주변에 강한 바람이 불면 수많은 리본이 동시에 흔들리며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은 사진만 찍고 지나치기보다 잠시 움직임을 지켜봐야 진가가 드러납니다. 바람이 약할 때와 강할 때 작품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연못에 비친 색과 실제 구조물이 어떻게 겹치는지를 관찰해 보세요. 제주에서 흔히 만나는 바람이 불편한 날씨가 아니라 작품을 계속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느껴집니다.
실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유배·돌 문화·신화라는 세 가지 단어를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이후 다른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서로 흩어져 있는 작품들이 한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돌이 품은 제주 신화
두 번째로 주목할 곳은 제주돌문화공원 안에 있는 오백장군갤러리입니다. 제주에서 돌은 건축 재료나 풍경의 일부에 그치지 않습니다. 화산섬의 탄생 과정과 생활 방식,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상상력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형광색 리본으로 표현된 용암을 보았다면, 이곳에서는 그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제주 돌의 질감과 시간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전시 관람과 공원 산책을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실내 작품을 본 뒤 야외의 돌과 숲을 천천히 살펴보면 작가들이 왜 제주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창작의 재료로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두 전시장은 모두 자연과 밀접하지만 감상 방식은 다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바람이 만드는 순간적인 변화를 살펴보고, 오백장군갤러리에서는 오랜 시간 쌓인 지질과 신화의 흔적에 집중해 보세요.
| 전시장 | 핵심 감상 주제 |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 |
|---|---|---|
| 제주도립미술관 | 바람, 용암, 변용 | 1,000여 개 리본이 바람에 반응하는 모습 관찰하기 |
| 오백장군갤러리 | 돌 문화, 자연, 신화 | 실내 전시와 돌문화공원의 야외 풍경을 함께 보기 |
Photo by Jerome Cha on Unsplash (Search: "Jeju volcanic stone park gallery landscape")
3. 사람과 도시의 기억을 담아낸 전시장 3곳
제주아트플랫폼: 객석에 앉은 해녀와 주민을 만나는 곳
제주아트플랫폼은 오래된 영화관을 리모델링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퍼포먼스 6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카디로바는 제주 작가와 지역 주민, 제주에서 친근한 어른을 부르는 표현인 ‘해녀 삼춘’들과 초상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작가가 그린 초상화와 제주 지역 작가 및 주민들이 그린 초상화는 옛 영화관의 객석에 한 점씩 배치됐습니다. 관람객은 무대 쪽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수많은 얼굴과 마주하게 됩니다.
보통 영화관에서는 관객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봅니다. 이 작품 앞에서는 관계가 반대로 바뀝니다. 내가 작품을 보는 동시에 객석의 얼굴들이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누가 작가이고 누가 모델인지 구분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 지역의 이야기를 어떻게 함께 만들었는지 살펴보세요.
예술공간 이아: 오래된 제주의 목소리를 읽는 공간
예술공간 이아에서는 작품의 이미지뿐 아니라 글과 기록에도 시간을 들여보세요.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추사의 유배 기록, 천주교인 정난주의 유배, 이재수의 난을 비롯한 민란과 저항, 제주 민요, 그리고 제주4·3으로 이어집니다.
이진경 작가의 나는 그 초록인가는 1223년 ‘제주’라는 명칭이 등장한 시점부터 제주4·3에 대한 공식 사과에 이르기까지 약 780년의 시간을 다룹니다. 역사에서 잊히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그림과 글씨로 되살리고, 제주의 풍토와 생태를 그 기억에 겹쳐 놓습니다.
이러한 작품은 배경지식을 모두 외워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시험 문제가 아닙니다. 작품에서 반복되는 이름과 문장, 색을 먼저 살펴본 뒤 ‘왜 이 목소리는 오랫동안 드러나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해 보세요.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 어떤 삶과 갈등이 축적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상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전시에서는 국가무형유산 제주큰굿 보유자 서순실 심방의 굿 다시 살으라 초감제도 펼쳐졌습니다. 초감제는 굿의 첫머리에 신들을 청해 들이는 의례입니다. 전시의 무사한 진행을 비는 말로 시작해 타악기 연주로 분위기를 고조했고, 역사 속에서 잊힌 목소리의 한과 참여자들의 감정을 겹쳐 아픔을 보듬었습니다. 이는 제주 신앙이 진열장 속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공동체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갤러리레미콘: 규모보다 발견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곳
갤러리레미콘은 제주도립미술관이나 돌문화공원과는 다른 호흡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입니다. 대형 기관 중심으로 관람하면 놓치기 쉬운 지역 예술 생태계와 작은 공간의 밀도에 집중해 보세요.
이번 비엔날레는 한때 존폐 논란과 예산 감축을 겪었지만, 지역 미술과 지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제4회 행사에서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습니다. 갤러리레미콘까지 관람 동선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엔날레의 의미는 유명 작가나 대형 작품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지역의 젊은 예술가와 관객이 국제 미술을 만나는 접점까지 살펴볼 때 선명해집니다.
다섯 전시장 가운데 한두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취향을 기준으로 결정해도 좋습니다. 자연과 설치 작품을 좋아한다면 제주도립미술관과 오백장군갤러리를, 사람과 지역사를 깊이 보고 싶다면 제주아트플랫폼과 예술공간 이아를 우선해 보세요. 여기에 독립적인 전시 공간의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다면 갤러리레미콘을 더하면 됩니다.
Photo by Niloofar Bdl on Unsplash (Search: "Jeju old cinema contemporary portrait art exhibition")
4. 다섯 전시장을 여행답게 즐기는 관람 방법
하루에 모두 보려 하지 마세요
다섯 전시장은 하나의 건물에 모여 있지 않습니다. 이동 시간을 줄이려고 무리하게 전부 방문하면 정작 작품을 천천히 볼 여유가 사라집니다. 중산간의 자연을 만나는 전시장과 도시의 기억을 읽는 전시장으로 나누어 관람하면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 추천 구성 | 전시장 | 어울리는 여행 방식 |
|---|---|---|
| 자연과 신화 중심 |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 야외 산책과 풍경 감상을 함께 즐기고 싶은 여행자 |
| 사람과 역사 중심 |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 원도심을 걸으며 지역의 기억을 살펴보고 싶은 여행자 |
| 지역 예술 확장 | 갤러리레미콘 | 작은 전시 공간과 제주 미술의 현재가 궁금한 여행자 |
실제 이동 순서는 숙소와 교통수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출발 전에는 각 전시장의 운영 시간, 휴관일, 작품 공개 여부와 연계 행사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야외 작품은 날씨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강풍이나 비 예보도 함께 살피는 편이 안전합니다.
작품 앞에서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세요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 이 작품에서 제주가 없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바람, 돌, 해녀, 신화처럼 제주에서 가져온 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 누가 작품 제작에 참여했을까요? 작가뿐 아니라 주민과 해녀, 지역 예술가가 참여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작품과 전시장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거울 연못과 오래된 영화관처럼 장소가 감상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보다 짧은 기록을 남겨보세요
작품 설명판을 모두 촬영하면 나중에 다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시장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 하나와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예를 들어 ‘바람이 불자 형광색 리본이 용암처럼 보였다’거나 ‘무대에서 객석의 초상화를 바라보니 내가 관찰받는 기분이 들었다’처럼 구체적으로 기록하면 여행이 오래 기억됩니다.
5. 작품보다 오래 남는 제주를 만나보세요
제주비엔날레는 아름다운 섬 풍경에 예술 작품을 덧붙인 행사가 아닙니다. 화산 활동이 만든 돌, 끊임없이 부는 바람, 해녀 공동체의 삶, 유배와 저항의 역사, 굿과 신화가 서로 섞이면서 오늘의 제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비엔날레를 이끄는 관점도 분명합니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와 어린이에게 대규모 국제 미술전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외부 작가에게는 제주를 이해하고 주민과 관계를 맺도록 요구합니다. 태풍이 바다 생태계를 휘저어야 순환이 이루어지고 건강해진다는 제주 격언처럼, 비엔날레가 지역 문화에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행사는 11월 15일까지 이어집니다. 일정만 확인하고 작품 수를 채우기보다, 관심 주제에 맞는 두세 공간부터 골라 천천히 둘러보세요. 전시장을 나온 뒤 만나는 바람과 돌, 사람들의 얼굴이 전과 다르게 보인다면 이번 예술 여행은 이미 충분한 의미를 얻은 셈입니다.
- 첫째,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바람이 작품을 바꾸는 순간을 지켜보세요.
- 둘째, 오백장군갤러리와 원도심 전시장에서는 돌·신화·유배·해녀 공동체가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세요.
- 셋째, 하루에 모든 곳을 돌기보다 관심사가 비슷한 전시장끼리 묶고 운영 일정과 날씨를 확인한 뒤 여유 있게 방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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